책 이야기

로마인 이야기 4 카이사르

파란 바람의 전설 2013. 8. 19. 20:34
카이샤르는   로마의  명문 귀족의가문에서 태어났다.  최고의가문은 아니다 할지라도, 그의 삼촌들이 집정관을 지냈고 , 외가는 학자 집안으로 외삼촌도 집정관을 지냈다.  공화정의 붕괴 과정에 중요한 인물인 마리우스가 고모부이다 . 물론 카이사르가 만난건   70대의 마리우스지만. 
로마의 중상류 가정의 교육 과정은 함께기거하는 가정교사로 부터노예와 함께 오전엔 인문학 배우고 오후엔 체육 활동을 했다. 카이샤르의 어릴적  교사는 당시에 최고의 도서관이 있고, 학문의도시인  알렉산드리아에서 공부한 갈리아인이었다. 그의 자유로운 사고와  갈리아 정벌이  우연 만은 아닌듯. 카이사르는 로마인이 추구하던 이상을  가장 잘 보여준 사람이다 즉 .상대를 선의로 받아드리는  관용, 건축이나  군대조직을 정비하는 순발력있는 현실주의,  理性과 공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법 정신, 어떤 상황에서나  낙천적인 여유로운 품성 이와 같은 것이다.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에 이르는 제국을 만든  로마인의 기질과  품성이 시대적인 요청이  카이사르를 만들었다고 할수 있다.
..37세 때 원로원에서 행한   첫 연설은   카이샤르가 평생을 일관했던 그의 철학이 잘 드러난 글이다 . 갈리아 전쟁기, 내전기를 통해서 보여지는 그의 모습, 관대함과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집정관  키케로가 발언에 이어 역모사건에 연루된 카틸리나를 변호하는 자신의 견해를 언급한것이다. 이를  카토가 반론을 펼쳐 결국 카틸리나 일당은사형으로 결정된다 .첫 연설이라 자신의 생각을 어떻게 전할지에 몰두해  상대에게서 올수 있는 반론을 방어 하지 못했다는 평이지만, 만약 반론을 미리 막아내는 방어적인 글이라면 변호사의 글이 되었을 것이다  키케로와 카토는 변호사로 성공 했지만, 이점 때문에  카이사르가  변호사로 성공을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상대의 잘못을 찾기보다는   인정할 부분을 찾는 재주를 가졌기 때문이다.  로마인이야기에 나오는  전문을 적어 본다 2000년전 사람이 이렇게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글을 쓸 있는 지 옛사람에 대한 나의 오만을 반성한다.시오노나나미가    카이사르가 폼베이우스가 아니라 술라와 싸웠다면, 글쎄 누가 이겼을지  모르겠다했다. 나는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만약 술라가 이겼다면  로마제국은 없었을 거라 말하고 싶다. 카이사르의 이런 관대함으로 인해 본인은 비록  암살을 당하게되지만 , 그의 후계자인  옥타비아누스에 의해 카이사르가 꿈꾸던 제국이 탄생 될수 있게 했던 거다. 

카이사르의 원로원에서 한 l첫 연설문 

  <원로원 의원 여러분 ,여러분 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는 말이지만 ,의심스러운 일에 결정을 내랴야 할때는  증오나 우정, 분노, 자비 같은 감정은 일단 잊어버리는 것이 정당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베일에 가려진 진실을 확인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특히 그것이 한때나마 사람들에게 만족을 주고 공동체에 이롭다고 여겨지는 경우에는 더욱 어렵습니다.이성에 무게를 두면 뇌가 주인이 됩니다 .하지만 감정이 지배하게 되면 결정을 내리는 것은 감성이고, 이성이 끼어들 여지는 사라지고 맙니다 .

  여러분은 역사를 상기해주시기 바랍니다. 많은 군주와 많은 민족이 분노나 자비에 사로 잡히 나머지 멸망했습니다.그보다도 내가 기쁨과 긍지를  가지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 조상들이 한 일입니다.우리 조상들은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공정한가 아니가에 따라 매사를 결정 했습니다.마케도니아 전쟁 당시의 페르세우스 왕에 대해서도,번영하고 있던 로도스 섬의 반항에 대해서도 공정성을 기준으로 처리 했습니다.우리 조상들은 전쟁이 난 뒤에도 그들을 벌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전쟁을 일으킨 것 자체 만으로는 아무도 처벌 할수 없기 때문입니다.세차례에 걸침 포에니 전쟁에서도 우리 조상들의 대처방식은 마찬가지 였습니다. 카르타고인들은 조약을 자주 위반 했지만, 극형을 당한 경우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는 말이지만,우리는 지금 조상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대처방식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렌툴루스를 비롯한 자들의 어리석은 행위에 대해서도 증오가 아니라 우리가 가진 명예에 대한 긍지로서 대처해주시기 바랍니다. 문제는 그들의  행위에 타당한 형벌이 무엇인가 하는  것인데, 그들의 죄는 상상 할수 없을 만큼 무겁기 때문에 이런 경우에야 말로 기존 법률의 테두리 안에서 처리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발언 하신 분들은  신중하게 말을 골라 하면서도, 우리 공화국이 직면해 있는 위험을 분명 설명 해주셨습니다. 전쟁이 일어났을 경우의 잔혹함, 패배자의 운명, 납치당할 처녀나 소년들, 어머니 품에서 납치 당할 젖먹이들,승자의변덕에 먹이가 딜 부녀자들, 보물을 강탈 당할 신전들,요컨데 무기와 피와 눈물 밖에 없는 상황을 마치 눈앞에 보는 것 처럼 생생하게 보여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발언의진정한 목적은 무엇입니까?우리로 하여금 음모를 더욱 증오하게 만들기 위해서 입니까?  실제로는 아무일도 하지않은 자들에 대한 두려움,그들이 저지를 것이라 예상되는 사태에 대한 두려움 을 부추기기 위해서 입니까? 그렇지는 않을 것 입니다.만약 그렇다면 인간은 자신의 언행을 부끄러워 할 수밖에 없으니까 말입니다.

   하지만 의원 여러분, 모든 인간이 언행의 자유를 평등하게 누릴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회 밑바닥에 살고 있는 천민이라면 분노에 사로 잡혀 행동하는 것도 용납 될 것입니다. 하지만 사회 상층부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행동을 변명하는 것은 용납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위로 올라가면 갈수록 행동의 자유는 제한 됩니다.지나치게 친절해도 안되고 지나치게 미워해도 안되며, 무엇보다도 증오에 눈이 멀어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걸핏하면 화를 내는 보통사람의 성질은 권력자의경우에는 오만이 되고 잔혹함이 되는 법입니다.

 의원 여러분,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모든 형벌은 당사자가 저질은 죄에 비해 좀 가벼워야한다고 말입니다.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나중에 가서야 이것을 깨닫게 마련 입니다. 형벌에 관해 논의 할때 사람들은 흔히 죄의본질은 잊어버리고, 형벌 자체가 무거우냐 가벼우냐 하는 것 밖에는 생각지 않게 됩니다.

  재능이 뛰어나고 가치있는 인물로 인정 받고 있는 실라누스의 견해가 애국 충정에서 나온 것임은 나도 의심치 않습니다 .증오에 눈이 멀지 않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피력한 의견이라는 것도 의심치 않습니다. 나 자신도 그의 공평무사한 성격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의견해가 잔혹 하다고는 말할수 없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그의견해가 국법에 어긋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실라누스 차기집정관,물론 당신은 이번 사건이 국가 전체에 공포를 주었을 만큼 큰 일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그런 극형을 요구 했겠지요.그것은 나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자리에서 불안을 토로하는것은무의미 합니다. 현직 집정관의 과감한 조치 덕택에, 설령 무장 봉기가 일어났다 해도 거기에 대한 대책은 이미 끝났으니까 말입니다.

 형벌에 관한 내 생각을 말씀드리자면,  눈물과 불행속에서 당하는 죽음은 형벌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구원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인간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죽어야 할 운면을 가진자가 맛보는 온갖 비참함을 경험 하지만, 일단 죽어버리면 기쁨도 없는 대신고통도 사라지니가요. 

 실라누스,당신은 왜태형에 처하자고 제안 하지 않았습니까? '포르키우스법'이 로마 시민에게는 그 형벌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입니까?  그렇다면 로마 시민권 소유자가 추방을 선택한 경우에는 사형을 처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한 법률도 있지 않습니까? 아니면 태형이 사형보다 더 무거운 형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까?

대역죄를 지은 자에게 어던 형벌이 더 잔혹하고 더 무거운가,또는 더 가벼운가, 실라누스, 여기에 대한 당신의 판단이 로마 국법에 비추어 볼때타당하다고 말할수 있는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그래도 당신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이것이국가를 배신한 자에 대한 판결임은 분명하다고 말입니다. 

일 반 대중은 항상 누군가에게 농락 당하고, 기회에, 시대에, 운명에 농락 당하는 법입니다. 그리고 그결과가  어떻게 나오든,그들은 그래도 마당한 존재에 불과 합니다. 하지만 의원 여러분 은 그렇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것이 앞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것인지도 고려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아무리 나쁜 사례로 간주되고 있는 일일지라도 애당초 그것이 시작된 동기는 선의였습니다.하지만 미숙하고 공정심이 모자란 사람이 권력을 잡은 경우에는 좋은 동기도 나쁜 결과를 낳게 됩니다. 처음 에는 죄인임이 분명한 사람을 처형하지만,  차츰 무고한 사람까지도 희생자로 만들게 됩니다.

 스파르타 인들은 아테네에 이겼을때, 30명의 압제자를 아테네인들에게 강요했습니다. 그 30명은 반체제 분자로 간주된자들을  재판도 하지 않고 사형에 처했습니다. 아테네 시민들은 그것을 보면서 처형 당한 자들은 극형을 당해 마땅하다고 환영 했습니다. 그런데 30명의 압제자에 의한 처형은 날로 조금씩 늘어나, 결국에는 죄없는 사람까지 붙잡아서 재판도 하지 않고 처형 하게 되었습니다. 공포가 아테네를 가득 채웠고,시민들은 노예가 됨으로서 자신들의 천박 함을 속죄해야 했습니다.                  우리 시대도 이런 천박한 생각과 무관 하지 않습니다.절대 권력을 장악한 술라가 반대파를 죽이기 시작했으 때, 로마시민들은 그들이 죽어 마땅하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이것이야말로우리 로마인들의 마음을 황페하게 만드는 시초가 되었습니다. 욕심에 눈이 먼 자들이 저택,아니 저택만이 아니라 항아리나 옷가지까지도 몽땅차지하고 싶은 나머지,그런 물건의주인 이름을 밀고하여 술라의 ‘살생부’를 넘치도록 채워주었습니다.이리하여 처음에는 남의일로 생각하고 있던자들이 어느날 갑자기 ‘살생부’에 자기 이름이 올라 있는 것을  발견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술라가 자파 사람들을 돈방석위에 앉혀준 뒤에야 겨우 진정 되었습니다.

첫 화살을 쏘는 사람이 이번처럼 집정관 키케로라면, 걱정할 것은 없습니다.하지만 로마에는 다른 성격을 가진 사람도 많이 살고 있습니다. 다른 기회에 다른 집정관이 거짓음모를 진실이라고 믿고, 자기 손에 넣은 권력을 남용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번 일이 선례가 되면,선례가 있다는 이유로 집정관과 ‘원로원 최종권고’가 칼을 빼들었을 경우, 어느누가 그 한계를 깨우쳐 주고, 어느누가 폭주를 막을 수 있겠습니까.

원로원 의원 여러분, 우리 조상들은 용감하면서도 분별력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좋은 것이라면 외국인 한테서도 거리낌 없이 배웠고, 그것을 방해하는 오만함은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삼니움 족한테서는 공격용과 방어용 무기를 도입 했고, 에투루리아인한테서는 관직의 표장을 도입 햇습니다.동맹국이든 적대국이든 가리지 않고, 좋다고 여겨지는게 있으면 망설이지 않고 도입한 것입니다. 거부하기보다는 모방하는 쪽을 택했습니다.

공화국 설립 당시에는 그리이스인들의 방식을 답습하여 태형을 남용했습니다. 사형으로 푸짐한 진수성찬을 베풀었습니다. 하지만 국가가 강대해 질수록 시민들의 발언권도 강해지고, 이런 방식이 무고한 사람들 한테까지 파급될 위험 성을 고려한 결과 ‘포르키우스’법이 제정되어 죄인한테도 자진망명의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의원 여러분, 나는 긴급 조치를 채택 하는 것에 반대하는 논거를 바로 이런 사고 방식에 두고 싶습니다. 약소국이었던 로마가 지금과 같은 강대국으로 성장한것은 우리 조상들이 가지고 있던 지혜와 덕 때문이 었습니다. 오늘날의 우리는 조상들에 비해 훨씬 강대한 권력을 가지고 있고, 다라서 그것을 사용할 때 더 한층 깊은 사려가 요구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면 이제 결론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후세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여죄인을 석방 할것인가, 그건 당치도 않습니다. 그래서는 카틸리나일당을 강화 시킬 뿐입니다.따라서 나는 이렇게 제안 하고 싶습니다. 다섯명의 재산을 몰수하고, 지방 도시에 한사람씩맡겨서 감금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그들에게는 원로원이나 민회에서 발언 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를 위반 하면 이번에야말로 그들을 국가의적으로 규탄하고 거기에 상응하는 형벌에 처하는 것입니다..

 
저작자 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