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중에게 일은 사회로 들어가는 입장권이라한다.
일의 본래의 의미는 생계를 위해서가 아니라 어떻게든 어떻게든 그 일을 해야 하는 ,그
일을 수행하여 어떤 미션을 성취한다는 의미다. 기독교 에서는 미션 신의 뜻이라 본다면 동양적인 사고는 하늘의 뜻을
따른다는 의미가 될수도 있겠다.
며칠전에 친구와 마르크스의 <일 (노동)> 과 간디의 <노동> 의 다른 점에 대해 이야기 했었다.
마르크스가 정신과 육체를 분리 시킨 이분적인 의미 의 육체적인 노동을 이야기 했다면
간디는 노동은 육체와 마음과 정신이 같이 만들어 내는 거라고 생각하고 그 가치를 보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 마르크스에게는 노동은 돈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면 , 간디에게는 내 마음이 들어간 들어간 작품, 내가 세상에 태어 나서 해야 하는 몫 같으거다.
나에게 일은 마르크스의 노동일까 . ? 간디의 노동일까 ?
강상중이 이야기는 간디의 일의 의미로 마르크스의 생계를 위한 노동도 새로운 차원으로 올려 놓은 것인가 ?.
대량 생산으로 효율을 만들어야 살아남는 자본주의 에서는 대부분의 직업으로서의 노동은 마르크스적이 될수 밖에 없는데 그래도 내 삶의 어느 부분은 간디의 작품처럼 되어야 사는 맛이 나지 않을 까 . 요리나 바느질 채소 가꾸기
또 한가지 일을 더 넓게 삶을 대하는 자세로 ,이시대를 살아가는 지혜로 자연 스러움을 들었다.
그는 자연 스럽게 란 있는 그대로 무리하지 않고 ,잘난채 하지 않고,작위적이지도 않으면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식하는것
다르게 말하면 부족함을 안다 . 자족하다는 말과 가깝단다. 내가 덧 붙인다면 부족함과 내가 가지고 있는 것도 아는게 진정 자족 할수 있을 것 같다.
책 중에서 ...
P 61
노력으로 변화 시킬수 있는 것과 변화 시킬수 없는 것 것 이런걸 포함하여 나자신을 인정 하는것 ,스스로를 알고 그런 나를 긍정 하는 것
P63
원래 인간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해야 한다.마찬가지로 그대로의 타자도 인정 해야 한다.그리고 그러한 자신을 다시 있는 그대로의 타자에게서 인정받아야 한다
*** 페터 비에리 의 < 삶의격.>이 생각났다.
타인이 나를 어떻게 대하는 가
나는 타인을 어떻게 대하는 가
P97
나라는 사람은 이제껏 살아 오면서 만난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 졌구나
P 130
막스 베버 ... 사람이 무엇을 잃어서는 안되는지 혹은 무엇을 읽을 수 밖에 없는 지 를 사회적 지평에서 바라 봤다.
*** 막스베버도 다시 읽으면 이런게 보일까 어렵기만 했는데 .
*** 칼 폴라니 <거대한 전환> 읽어 봐야 겠다.